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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갑을관계와 헌법 33조

 

요즘 들어 세간에 오르내리는 단어 중 유행처럼 쓰이는 말이 갑을 관계다. ()과 을()은 계약의 양측 당사자를 지칭하는 것인데 여기서 상대적 우위에 있는 사람이 갑으로 통용된다. 예를 들어 물건을 사고파는 경우, 전세나 월세의 계약, 취업에 성공하여 작성하는 근로계약 등 당사자가 있는 법률행위는 계약을 함으로써 서로 간의 관계가 성립이 되는데 이 중에서 누가 갑인가 하는  실질적 지위는 힘의 우위에 있는 자가 차지하게 된다. 물건을 파는 상점의 경우 그곳이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곳이라면 주인이 을의 입장이므로 손님의 흥정에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며 집을 세 놓은 경우도 건물에 문제가 많거나 낡아서 세입자를 구경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집의 소유자가 을이 된다.

 

 

취업에 성공한 노동자는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되어 있는데(근로기준법 제15~42) 이 경우에도 위에서 든 다른 예와 마찬가지의 원리가 작용한다. 즉 누가 힘의 우위에 있는가에 따라 갑과 을이 정해지는데 현재로서는 사용자가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다. 근로기준법 제4조는 근로계약시 사용자와 노동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는 노동자 중에 어느 누가 면접관으로 앉아 있는 사용자와 동등하게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이 원하는 근로조건을 입밖에 낼 수가 있을 것인가.

 

 

근대 민법의 원칙들 중 '계약 자유의 원칙'은 양 당사자가 서로 계약 조건에 동의하고 서명을 했으면 그것은 유효하다는 원칙을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당사자가 동의했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약자가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여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사회 체제의 유지를 어렵게 하는 일들이 늘어나게 되었으므로 이런 원칙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양 당사자의 기울어짐 없는 동등한 계약 내용이었는지를 따져 실질적 평등이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다. 공정한 거래를 유도하고 한 기업이 독식하는 것을 금지하는(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이는 헌법의 기본 정신인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사회가 제대로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노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 노동자를 고용해야만 하는데 구인광고를 낸 후 절차를 거쳐 입사가 결정된 노동자와 합의가 되는 상황이 바로 근로계약이다. 그러므로 이 계약에도 힘의 논리가 작용하여 강자와 약자가 구별될 수 밖에 없는데 기업(즉 사용자)이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이 그렇다 보니 헌법 제32조에 의해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져 불합리에 대한 규율을 정하게 되었지만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에 대한 벌칙이 경미한 수준에 그치고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가 오히려 해고의 위험에 놓이게 되는 현상이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노동자를 지켜주는 데 별 역할을 하지 못했다.

 

 

법이 있어도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직장을 잃게 되므로 있으나 마나 한 법이 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를 보완해야 했는데 내용인즉 사용자에게 혼자서 따지지 말고 여럿이 함께 목소리를 내야 실질적으로 대등한 입장이 되겠다는 생각에 만들어진 헌법 제33 '노동3'이다. 이 조항에서 말하는 단체란 노동조합만을 말하는 것이며 이 헌법 조항에 의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이 만들어지게 된다.

 

 

갑과 을의 관계는 고정 불변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누가 우월적 지위에 있는가 하는 것은 바뀌게 마련이다. 물건을 하나 사려는 고객에 비해 수백 개를 사는 손님은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말하며 흥정을 통해 물건 값을 깎을 수도 있을 것이므로 이때는 갑이 된다. 반대로 외상으로 구입을 하려는 사람은 깎는 것은 엄두도 못 낼 뿐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손에 넣지 못할 가능성이 크므로 을의 지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갑과 을의 관계는 상황에 따라 바뀌게 된다.

 

 

역사적으로 노동자는 을의 자리에 위치해 있었고 그 현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던지며 외쳤던 '근로기준법 준수'는 지금의 노동자들의 입에서도 메아리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갑의 지위에 서게 되는 방법은 없는가?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이 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하나로 뭉치면 되는데 그것은 바로 노동조합이다. 헌법 제33조는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의 향상을 위해 - 유지가 아니라 - 자주적으로 노동3권을 가지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향상이 아니라 최저의 현상유지 조차 힘들다.

 

 

삶이 너무나도 힘든 노동자들은 하소연을 하다 해고당하거나 높은 곳에 올라 절절한 사연을 호소한다. 노동조합들은 집회나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잘못된 점을 고쳐줄 것을 요구한다. 법이 있어도 법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노동자들의 아픈 곳을 감싸주는 것이 사명인 (고용)노동부는 그 사명을 버린 지 오래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방법은 없는가?

 

 

노동자가 갑이 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이 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하여 내가 내 삶을 바꾸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에 대해서 많은 왜곡 선전이 있어왔지만 노동자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은 노동조합뿐이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다음과 같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삶의 질을 바꾸기 위해서는 스스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노동조합이란 당신들의 노동조건을 유지하는 것만 아니라 개선하여 당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함으로써 노동쟁의를 예방하고 해결해야 한다. 왜냐 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산업평화를 유지하여 결국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1]

 

 

 

 

        <@wikipedia,  8시간 노동을 외치던 스웨덴 노동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