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해진 우리 사회의 모습에 비례해 언론을 장식하는 뉴스도 그만큼 많지만 그중에 노동조합과 관련한 소식의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나타나는 노동조합의 모습은 언제나 부정적 이미지인데 그깟 좋지도 않은 단체들의 소식을 뭣 때문에 자주 비중 있게 다뤄주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의 노동조합원 수를 모두 합해봐야 전체 임금 노동자의 10%가 될까 말까 할 정도인데 국가경제에 악영향만 끼치고 사회를 소란스럽게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굳이 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대한민국 헌법은 130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헌법은 우리 사회의 복잡한 구조와 관련된 기본 정신과 실천 방향에 대해 규정을 하고 있으므로 어느 한 분야의 문제를 130개 조항 중 1개 조항에 포함시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노동과 직접 관련 있는 조항은 2개씩이나 포함되어 있으니 노동의 비중은 매우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재벌들의 대변 역할을 맡은 단체와 언론들이 그토록 노동조합의 위상을 끌어내리기 위해 분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조합은 헌법 정신의 구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다양한 상품의 개발과 판매를 통해 이윤을 올리는 것이 최대의 목표다. 노동자는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유지하고 인간으로서의 품위 유지를 위한 문화생활과 편의용품 등을 구입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며 그것을 위해 기업에 들어가서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벌어 들인 돈을 놓고 서로 상반된 이윤을 조금이라도 더 남겨야 하는 기업과 노동자에게 있어 임금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대결 사항인 것이다. 과거 서구 사회에서부터 시작된 양자의 갈등은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 냈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여러 가지의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발전되어 왔다. 1919년 ILO가 탄생되어 노동자를 지나치게 힘들게 하거나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문제들을 규제하는 규약들이 만들어졌고 시대의 조류와 맞물리면서 여러 나라에서 입법이 이루어졌다.
법률을 만들었으나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업주들이 여전히 강자의 위치에 있었으므로 한 개인인 노동자가 법률에 호소한 결과는 해고로 이어지기 일쑤였으며 이와 같은 현상은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혼자서 하소연 해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으므로 헌법은 노동 3권의 보장을 통해 여러 사람이 단체로 뭉쳐서 큰 목소리를 낼 것을 권유하는 조항을 만들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헌법의 정신마저 폄훼되는 일이 일상적 현상이 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총수는 노동조합 설립 저지를 유훈으로 남겼을 정도다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학교
대한민국은 가부장적이며 아직도 유교의 관념적 윤리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학교의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며 실제 생활에서 그것을 찾아보기는 불가능에 가까울뿐만 아니라 때로는 민주라는 의미가 비민주적인 사람들과 세력에 의해 엉뚱하게 쓰이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이 민주주의를 접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수밖에 없다. 수십 년을 비민주적 가정과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노동조합은 매우 특이한 경험이며 다가오는 의미가 전혀 새로운 것일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은 그러므로 한국 사회에 있어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학교다. 노동조합의 힘은 바로 민주적인 조직의 결성과 민주적인 운영을 통해 담보될 수 있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를 표방하는 노동조합에서 민주를 찾는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주인인 노동조합원들이 조직의 결정사항에 대해 알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도 복잡한 내용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 이유는 다양하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지쳐서 다른 것에 눈 돌릴 틈이 없기도 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많이 배운 훌륭한 분들이나 진보운동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라는 사고의 틀에 갇혀있기도 하다. 여기에서 우리 노동조합들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구호를 외치며 잘못을 되풀이하는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즉 민주노조에 민주주의가 없으며 그 주인인 노동조합원들이 주인의식에서 멀어져 있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민주노총의 경우 산업별 노조(또는 연맹)가 16개 있으며 민주노총은 이들의 센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민주노조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은 규약과 규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규약과 규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조합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이런 이유로 인해 비민주적인 의결과 집행 등의 운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절차는 출발점이며 그것만 제대로 지킨다면 이미 그 조직의 민주화는 반을 넘어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의 규약과 규정을 잘 알지 못하는 성원들을 동원하거나 이용해서 개인 또는 몇몇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의 목적 달성을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원들이 똑똑해지거나 조직의 운영을 꿰뚫어 보는것은 그들에게 매우 불편한 일인 것이다.
비 민주적 관행 청산이 노동운동의 시작점
과거에 어느 산별 연맹에서는 임원간의 갈등에 잔꾀와 권모술수가 동원되기도 했다. 함께 러닝메이트로 출마한 사람들이 당선된 후 자기들끼리 갈등이 빚어지자 그중에 일부가 세력을 만들어 임원 총사퇴를 선언하여 임기를 중단시킨 후 그 보궐선거에 사퇴 당사자인 일부 세력의 한 명이 다시 출마하여 위원장에 당선되기도 했는데 당선의 변인즉 이끌어갈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었다(참고로 박정희도 그런 이유를 대며 집권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또 하나의 민주노조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노조 주인인 조합원들의 총의가 담겨있는 규약과 규정이라는 절차를 내팽개친 채 자신들의 논리를 만들어 노동조합의 지도부 축출을 시도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며 노동조합을 만들어 힘들게 투쟁해온 자랑스런 노동자들을 소위 전문적 운동가들과 정치세력화를 꿈꾸는 자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짓밟음으로써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면, 민주노조의 정당성 자체가 확보될 수 없으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진보운동의 가치가 쓰레기통에 처박힐 수밖에 없다. 병균이 몸 안에 들어오면 우선 당장은 약물을 주입하여 병균을 막거나 죽일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몸에 저항할 수 있는 세포들이 만들어져 스스로 물리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천한 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불순한 세력들에 맞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노동조합들이 튼튼하게 자리 잡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민주적인 조직이 되는 것이 선결과제며 조합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자들이 주인의식으로 노동조합을 감시하고 바로 세우는 것이 필수다. 노동조합은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의 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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