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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노동조합이 민주화되어야 한다

 

2011년 가을부터 시작한 노동자들을 위한 학습에는 개인 및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을 마친 후에 한 노동조합이 따로 교육을 요청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민주노조라 해도 이렇게 공부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기에 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애착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스스로 현실을 자각하여 문제점을 발견한 후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느 지점이 문제인지 정확히 발견하는 것을 통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삶을 바꿔내는 일이 혼자의 힘으로 불가능하며 결국 모든 사람들이 손을 맞잡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진실을 직접 발견하여 껍데기뿐인 노동조합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들이 주인이 되어 투쟁을 이어가는 노동조합이라야만 노동해방이니 세상변혁이니하는 구호들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에 공부의 목적이 있다.


2013년에는 약 50여 회의 학습이 예정되어 진행 중인데 최근 들어 노동조합 내에 문제가 터지면서 이론 학습을 현실에 적용해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은 노동조합 본조(전국 규모 노동조합의 경우 중앙 센터를 지칭)의 구성원들이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특히 민주를 표방하는 노동조합이라면 아무리 위원장이라 하더라도 조직의 규약과 규정을 어기고 비민주적인 행태를 통해 노동조합과 조합원에게 해를 끼치다면 언제든 탄핵하여 그 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전국에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투쟁을 하고 있는 조합원들이 직접 투표로 선출한 위원장에 대해 몇몇의 사람들이 축출을 시도한 것에 있다.


노동조합의 주인은 전체 조합원이며 그 누구도 밀실에서 노동조합과 관련된 사항을 결정하거나 집행할 수 없다. 규약은 전체 조합원들의 합의(合意)를 글자로 표현한 것이므로 여기에서 정한 내용과 절차를 벗어나는 일들은 모두 비민주적이고 비노동조합적인 독재에 다름 아니다.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학교다! 수구세력과 맞서 싸운다는 자칭 진보라는 곳에서도 민주는 지켜지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며 가정과 학교에서조차 민주의 이름은 온데 간데없다. 이런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이야말로 이 사회의 등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조직체인 것이다. 그러한 노동조합 안에서 민주가 없이 의사결정과 집행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수구세력의 비민주적 행태와는 다른, 아니 그보다 더 악랄한 형태의 악이며 1,700만 노동자의 명운의 방향을 선도해야 할 의무를 헌식 짝 취급하는 것이다.


전태일은 독학으로 한자 투성이의 근로기준법과 노동법교과서를 띄엄띄엄 읽으며 곁에 대학생 친구 한 명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으며 동네에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그의 집에 밤 12시가 넘어서도 찾아가고 그가 없을 때에는 집 앞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렸다는 일화를 평전을 통해 알 수 있다. 전태일이 분신한 1970년 11월 13일 이후 사회 밑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볼 틈 없이 입신양명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던 대학생들이 각성하여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으며 민주화운동으로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전태일의 수많은 글들은 그냥 묻혀버릴뻔 했으나 자기 자신도 수배 중인 상황에서 고 조영래 변호사는 헌신적으로 전태일 열사의 발자취를 찾아내 명저로 꼽히는 『전태일 평전』을 남겼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많은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현장에 뛰어들어 같은 노동자로서 노동자들을 가르치고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등의 역할을 통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투쟁을 이어갈 수 있도록 헌신적인 노력들을 했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에 다시 돌아보니 그러한 빛나는 전통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운동가들을 위한 운동만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태어나서부터 강압과 비민주적 세상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은 30대~40대의 나이를 넘어서야 그나마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한 경우에 한해 민주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로지 착하게 열심히 일만 하면 잘 살 것이라는 사회의 세뇌에 소처럼 노동만 하던 사람들이 서서히 자각을 하고 노동조합으로 거듭나지만 그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투쟁에만 매달리기에는 아직은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조합원들의 조합비를 모아 노동조합 사무실을 마련하고 대신 일해줄 전문가들을 영입해 노동조합의 운영과 투쟁을 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에 의해 영입된 전문가들은 노동자들과의 돈독한 관계를 이용해 자신들의 위치를 하나의 권력화 하기에 이른다. 결국 자신들의 정치적, 정파적 입장에 현장 노동자들을 동원하는데있어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관계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투쟁이 뭔지 잘 알지 못하던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조직해주고 교육해주며 교섭까지 대신해주는 믿음직한 전문가들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힘을 발휘하려는 사람들이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란 노동자가 누군가 명망가의 지시에 따라 이 정당 저 정당을 가입했다 탈퇴하는 식으로 철새 몰이 당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가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주변의 동료와 함께 힘을 합한 후 노동조합을 통해 제대로 된 투쟁을 만들어 나가며 그 연장선에서 정당을 만들어 법률 등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등의 일련의 진행과정이 바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진정한 의미다.


학생운동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노동조합등에 포진해 있는 사람들이나 노동자를 통한 정치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이제는 노동자들을 놔줘야 한다. 그들이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되 뒤로 빠져야 한다. 노동자들을 앵벌이 취급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전태일 열사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며 열사를 도왔던, 그리고 열사 이후에 노동권 확보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수많은 지식인과 열사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전문적인 조력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궁극에는 오히려 자신을 가르친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노동자들로 거듭나야만 그들이 거대한 자본에 맞서 싸울 진정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독재자는 국민들이 똑독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 민주노조 안에서도 주인인 조합원이 똑똑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박정희의 화신에 다름 아니다. 고 조영래 변호사의 묘를 본 적이 있는가? 별 내색 없이 온화한 미소로 한쪽 축대 아래 자리하고 있다. 함부로 '열사 정신 계승'을 떠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