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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프로야구선수노조, 멧돼지 사냥과 노동3권

 

최근 프로야구 선수들이 노동조합 설립을 선언했다. 예전부터 보도를 통해 프로야구 선수들이 노동조합 설립을 시도한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야구단을 소유한 구단들은 즉각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선수들의 노동조합 설립총회가 끝나자마자 기업들과 그 나팔수들은 기다렸다는 듯 앞다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업들은 선수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법을 부정하는 기업들 



대한민국의「근로기준법」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이나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근로자로서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이러한 대한민국의 법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기 위해, '근로조건의 유지와 개선은 물론 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헌법」과 여러 법률은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있어서 누가 인정을 하거나 허락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쓰레기들과 정권은 연일 왜곡보도를 통해 국민들을 우민화(愚民化)하기에 여념이 없다. 헌법과 근로기준법, 그리고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은 노동자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이 기업과 국가경제의 발전과 안정에 기여할 것임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즉,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노동조합의 정당한 파업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에 이르도록 방치한 정부와 정부의 비호 아래 법을 어기며 노조와 정상적인 교섭에 임하지 않은 기업의 책임이 상당한데도 쓰레기들은 헌법상 정당한 권리인 파업 자체를 불법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언제 파업을 합법이라 말한 적 있는가? 


한술 더 떠서 수십 년 전 시작되었던 레이건과 대처의 노동탄압을 배우라고 부추긴다. 정당한 국민의 권리회복 요구에 탄압으로 맞섰던 그들의 사례를 미화시키며 '법과 원칙을 엄중히 적용'하라고 가르친다. 법과 원칙은 지키려면 대한민국의 헌법과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을 지키면 되는 것이다.
국민을 볼모로 한 파업을 중단하라고 가르친다. 누가 국민을 볼모로 하는 것인지, 누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지 국민들이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라고 짐작하는 저들은 국민 자체를 무식한 집단으로 규정하고 선정적으로 기사를 씀으로써 여론을 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수십 년~ 백여 년 쌓아왔다.
 


파업이 일어나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경과가 어땠는지, 회사 측에서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살피는 게 언론의 역할이며 정부는 그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헌법정신에 입각해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러한 분석과 정부의 대처방안은 없다.


 


선동과 선정적 기사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쓰레기 글들

 

"불법파업에 레이건. 대처처럼 단호히 맞서라" - 매일경제 

 

 

헌법과 노동 관련 법의 정신은 약자에 대한 배려이다. 약자인 노동자가 혼자서 거대한 기업에 맞설 수 없으므로 단체로 노동조합을 만들어 대항하라는 것이 헌법 정신이며 노동자의 근로조건 향상 등 주장이 관철되지 않고 기업 측이 배 째라 식으로 대응한다면 파업을 통해서라도 대등한 입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업이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빵공장에서 파업을 하면 빵을 사 먹을 수 없게 되고 휴대폰 공장에서 파업을 하면 휴대폰을 살 수 없다. 철도가 파업하면 기차가 다닐 수 없게 되고 출퇴근과 여행은 물론 수출에도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헌법이 파업을 합법적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라도 기업이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타협을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산업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고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한 쓰레기 언론과 정권은 파업 자체를 인정한 적이 없다. 국민의 불편을 부각하며 선정과 선동으로 국민을 호도하여 정당하고 합법적인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화하느라 혈안이었다. 과연 파업을 인정한 적이 있는가.


 

묵묵히 걷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학생이 시험을 봐야 하는데 철도파업으로 인해 보지 못해서 꿈이 멈췄다고 한다. 얼핏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노동자의 파업으로 철도가 멈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비행기 조종사들이 파업하면 외국을 나갈 수 없어 피해를 볼 것이고 부두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수출을 못할 것이고 백화점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쇼핑을 할 수 없게 되고 생필품 생산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당장 피해가 속출할 것이다.
 


그렇다면 헌법은 왜 파업을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을까. 결국 누군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빤히 보이는데도 파업을 인정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에 대한 고민이 없는 한 계속 이어지는 파업과 노동쟁의를 바라보는 눈은 혼란스럽기만 하거나 진실 왜곡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원칙은 원칙으로서 그 가치가 있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하는 식의 논리에 우리 국민은 수십 년 이상을 당해왔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아직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바로 조중동 같은 쓰레기가 폐간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사회 곳곳에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는 왜곡과 불편부당한 시각의 조작을 제거해야만 한다.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 -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한 어린 학생이 파업으로 인해 인생을 망치게 되었다는 선정적 내용이다. 1년여 전 택배일을 하는 노동자가 30원 때문에 거대기업에 맞서다 스스로 목을 매어 인생을 끝낸 가슴 아픈 이야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삶의 터전에서 그냥은 쫓겨날 수 없다며 생을 마감한 용산의 마음 시리고도 시린 사연은 남의 나라 이야기 일 뿐이다. 그러한 자칭 언론이 위의 기사를 쓴 저의를 생각하면 씁쓸한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멧돼지 사냥과 노동조합

 
한 티브이 방송의 프로그램에서 멧돼지 사냥을 한다고 한다. 최근 멧돼지가 전국적으로 20여만 마리 넘게 증가하여 큰 문제라는 보도들을 본 적이 있다. 문제는 멧돼지가 민가는 물론 도심까지 내려와서 사람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를 막기 위해 사냥을 허용하고 이제는 오락프로의 한 꼭지로서 웃으며 즐기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혹성탈출'이라는 영화에서 원숭이들이 인간을 사냥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멧돼지가 왜 도심까지 내려오는지, 그동안 우리의 잘못은 없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그들이 산에서 편하게 저들만의 삶을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며 우리도 피해를 입지 않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피해를 줬으니 때려잡아야 한다는 단순논리로 멧돼지들이 내려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인디언과 백인 침략자들의 싸움처럼 한쪽이 멸종해야 끝날수밖에 없는 싸움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찌 이리 야만적인가. 


멧돼지를 다루는 기사와 노동조합을 다루는 기사가 비슷한 수준인 사회. 모든 것을 단편적으로 보고 재단하며 이익을 내기 위한 속도전에 방해를 하는 모든 것은 불도저로 밀고 처단하는 사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국민의 눈과 귀를 막거나 속여도 아무 문제없는 사회.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