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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노동조합 설립 지원센터를 만들라

노동과 관련한 토론 의제나 질의 사항이 없는지 묻는 이들이 있는 것을 보니 선거가 다가오긴 오는 모양이다. 때만 되면 반복되는 토론과 질의가 무슨 소용일까. 그저 정치하는 사람들이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내보이려는데 동원되는 들러리일 뿐이라는 생각은 그간 그들이 보여준 행태를 경험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인천공항을 찾아 다양한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약속했다. 이후 서울시장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지위 향상을 위한 선언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열악한 삶의 환경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은 바람직하므로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가 구호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차분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그들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진정성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은 간단명료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ad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고 선언하며 국가가 이를 보장해야 한다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제10조)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했다. (제69조) 또한 헌법은 노동자의 근로조건은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될 정도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국가의 해야 할 구체적 내용까지 정해주고 있다. (제32조 제3항) 그러니 정부는 고민하거나 망설일 필요가 없이 편한 마음으로 헌법과 국민이 부여한 임무를 완수하면 될 일이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공적인 약속을 내놓고 있으나 노동 문제에 관한 한 여느 때와 마찬가지의 헛약속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치를 들이대고 로드맵을 그려가며 설명하는 것은 유권자들이 헷갈리게만 할 뿐 실속 없는 짓이다. 이 사회 정치인들의 언행을 경험해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노동조합 설립 지원센터(가칭)를 만들어 운영하라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헌법 제33조가 보장하는 기본권이지만 현실에서는 온갖 방해 때문에 만드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노동조합은 산업평화와 국민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지만(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1조) 만들려는 낌새만 보여도 협박과 회유가 따라오고 결국 앞장선 노동자 몇 사람의 해고 등으로 끝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대한민국은 재산권 등 사적 소유가 보장되는 사회다. 전세를 얻어 이사하는 경우에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를 찍어준다. 과거에는 건물주가 빚을 많이 지게 되어 채권자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는 경우 세입자는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쫓겨나 심지어 목숨을 끊는 등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었다. 그래서 확정일자 제도를 마련해 현재와 같이 국가가 일정한 전세금을 보호해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창업 지원을 위한 창구를 열어 국민들이 더욱 나은 재산권 확보와 증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도 정부와 지자체는 시행하고 있다. 이들 사례를 보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공공기관 내에 노동조합의 설립을 지원하는 센터를 두어 가진 것이라고는 노동력 한 가지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재산인 노동력의 가치를 지키고 늘리는 데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과 향후 당선인들에게 권고한다. 노동자의 삶과 관련해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면 헛구호 말고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공식적이고도 지속적인 지원센터를 세우라고. 그 이후는 노동자들이 알아서 다 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그 수를 늘려 기업과 대등한 힘을 가지게 되면 알아서 흥정도 잘 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의 가격을 둔 흥정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지금까지 정부와 언론이 흥정에 끼어들어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폭 삭감되거나 헐값에 땡처리되도록 힘을 실어준 것이 사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왜곡된 시각을 심으려 노력한 자들에 의해 노동자들은 자신의 눈을 잃었다. 그러니 당분간 정부와 지자체가 되돌려 놓는 역할까지는 해야 하겠다. 노동조합 설립 지원센터를 열어 언제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주체적으로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협상할 힘을 키우도록 하라. 창업 지원이나 일자리 창출 등에 들이는 노력만큼의 열의를 노동조합 설립에 두어 그 의미를 알리는 홍보에도 전력을 다하라.

무엇인가를 자꾸 던져주려고 하지 말 것이며, 노동자들이 알아서 할 것이니 거기까지만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기사입니다. http://omn.kr/r9l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