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정규직 운운하며 홍보할 일 아니다
서울시가 고용하고 있는 계약직 노동자들을 2012년 5월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2년 이상 일을 하게 되는 상시 노동자에 대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선 방안을 검토를 거쳐 시행하겠다는 것인데, 서울시 발표대로라면 서울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으로는 정규직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게 되고 처우의 측면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이를 두고 환영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력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적대적 여론에 맞서 소신 있는 정책을 하나씩 집행해 나가는 박원순 시장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의 발표를 보며 찬성이냐 반대냐의 문제를 떠나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정규직과 무기계약이라는 말을 섞어서 사용하는 것일까요?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은 엄연히 다른 형태이므로 각각의 명칭 안에 담긴 정확한 뜻을 얼버무린 채 넘어가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해 이번 서울시가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노동자들의 계약형태는 무기계약직인 것이지 정규직은 아니지 않습니까?
무기(無期)라는 말은 기한이 없다는 뜻이지 종신계약은 아니므로 용어 자체로 혼란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기한이 없다는 말은 언제든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지요. 각 지방자치단체는 무기계약직과 관련한 규정을 조례 등을 통해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무기계약의 노동자들은 해당 사업이 종료되거나 예산이 삭감되는 등 사정의 변경이 생기면 일자리가 없어지게 됩니다.
은근슬쩍 ‘사회적 공헌’ 떠드는 자들에게 일침을
그나마 진보적인 시장님이 취임해서 열악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를 좋은 근로계약으로 바꿔 삶의 질을 높여주겠다는데 왜 토를 다는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거라고 짐작이 됩니다. 그렇지만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들어 복지니 상생이니 하는 단어들이 사회의 화두로 등장하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사기업들은 무기계약으로 –그나마 용역회사와 파견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채용하는 것을 마치 대단한 사회적 공헌을 하는 양 선전을 하곤 합니다. 이에 부화뇌동하는 공무원들과 정부기관을 포함한 공공기관들도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고 말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에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신규 직원 채용 시 사회 공헌을 하는 것으로 홍보 해댑니다. 기업이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남기는 것이 존재목적이므로 논외로 하고, 이러한 기업들의 행태에 동조하며 국민의 눈을 가리는 것이 바로 정부와 공공기관들입니다.
“정규직이란 근로계약에 의해 취업을 하는 순간부터 노동자의 과오가 없거나 사업장이 문을 닫지 않는 이상 취업규칙에서 정한 정년에 퇴직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노동자가 이곳 저곳 지시에 의해 떠돌아 다니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고용된 기업의 사업장에서 일을 하는 형태가 정규직 입니다. 이 범위에서 벗어나는 노동의 형태는 그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할지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이죠.”
노동자들 자신도 내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은 당사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가 그렇게 방치한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기업들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도 그나마 이게 어디냐며 열악한 조건이라도 일자리 있는 것에 감사하는 착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노동시간 길어도 상관 없으니 그저 일하게 해주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노동자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이용하는 사기업과 공공기관의 잘못된 행태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업에게 진정한 사회적 공헌이 무엇인지 보여주길
서울시의 이번 결정과 용기에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서울시가 정규직 운운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보다는 겸허한 자세로 임해서 이번 결정이 아직 제대로 된 정규직이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그 전 단계로서의 성과가 있었으며 궁극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서울시의 목표라는 발표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렇게 해야 이번 결정에 은근슬쩍 동승하면서 자신들도 정규직을 채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사회적 공헌을 하고 있다는 말장난을 하는 사기업들의 잔꾀를 차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 부처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넘쳐나고 편법을 동원한 근로계약서 작성 등이 관행화 되어있는 이때에 박원순 시장의 뜻 깊은 정책이 사심 가득한 기업들에 의해 악용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가 모두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를 통해 진정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서울시가 그 선도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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