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란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1호)
그런데 이 임금이라는 것이 삶의 족쇄입니다.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한 삶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삶을 누리려면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할테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을 가지거나 취업을 해서 돈 버는 일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근로자는 먹고 살기 위해 자급자족이 아니라 시장(마트)에서 돈을 주고 상품을 구입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임금은 과연 노동의 대가 일까요?
'노동착취' 나 '임금노예'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 한 노동자가 받는 임금(월급)은 정말 일 한 만큼 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자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생명이 정해져 있으며 언제가 죽게 마련입니다. 내가 살았던 어제는 이미 죽은 시간입니다. 그렇게 삶 일부분을 희생하며 생산에 쏟아 부은 대가로서 임금은 온전히 나에게 돌아오는 것 일까요?
'월급' 이라는 표현만 보자면 마치 한달간 일 한 대가로 받는 돈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임금(월급)은 내가 일 한 만큼 나에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받아야 할 임금 중 상당 부분은 누락된 채 지급됩니다. 내가 열심히 일 한 만큼을 100 이라고 가정을 했을 때 돌아오는 임금은 100 이 아니라 훨씬 적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기여한 노동 시간 중 돌려받지 못 한 만큼을 착취 당한 것입니다. 이것이 '노동착취' 이며 노동자가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면서도 찍소리 할 수 없이 일만 하는 상황을 '임금노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설령 부당함을 알게 된 노동자가 있다 하더라도 항의하고 따지는 순간 해고의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해고 당하는 순간 온갖 걱정에 머리 속이 복잡해 집니다. 공과금은 물론이고 카드 대금, 생활비, 자녀 교육비, 온갖 보험료 등 매달 임금을 받아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처지의 노동자로서는 해고는 곧 죽음입니다.
고대 노예나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흑인노예는 목이나 손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어서 어쩔수 없이 끌려다니며 노동을 했습니다. 오늘날의 임금 노동자는 겉으로는 매우 자유롭게 일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임금이라는 족쇄는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수 없이 부당한 처지를 감수하며 일 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현대를 사는 노동자들은 노동착취나 임금노예의 문제가 자신과는 관련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직업과 직장을 선택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나은 노동자들의 삶을 위해 싸우려는 생각 조차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진실은 그저 누군가가 침튀기며 열변을 토한다 해도 몸으로 느끼기는 힘듭니다.
그러므로 직접 역사를 공부하고 직접 인식을 하며 자신의 삶에 대비시켜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를 심각히 고민한 후 삶의 변화를 위한 실천에 나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출간 된 <마르크스가 보낸 편지: 강신준 글>은 경제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현재의 임금노동자들의 삶이 왜 이리 힘겨운가에 대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소년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기술된 이 책을 연말연시에 편한 자세로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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