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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공기업 민영화의 폐해를 공공도서관 구내식당에서 마주하다.

 

1970년대의 쌀쌀한 날씨에 정독도서관이나 남산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다가 점심을 먹으려 하면 양은 도시락의 차가움에 밥을 먹는 것이 꺼려지곤 했다. 그럴 때 도서관의 구내식당에서 팔던 어묵국물(만)에 밥을 말아먹으면 속이 따뜻해지며 잠시나마 추위를 잊기도 했었다. 당시 국물만의 가격이 5원였던가 10원였던가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2013년 서울의 강서도서관. 물론 공공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구내식당을 외부 업체에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해쯤 업체가 바뀐듯하다. 외식 전문업체가 운영하는 것이 어떠한 장점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피부로 느낄 수 없지만 인근의 양천도서관도 그리 하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이유는 있는 듯하다.

 

이들 도서관들은 지난해 운영업체가 바뀐 후 공통적으로 변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구내식당에 동일한 문구의 경고문이 붙었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컵라면 반입 금지'라는 문구다. 양천도서관의 경우에는 그 전에도 'O솥 도시락 반임 금지' 등 특정 도시락 업체들의 명칭이나 주변 식당들의 이름을 적시하여 가지고 들어올 수 없다는 경고문을 붙이기도 했었다.

 

현재는 그런 내용의 문구는 없어졌지만 유독 컵라면에 대해서만 금지를 하고 있으니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의 문제라면 방안을 찾으면 될 일이니 말이다.

 

지난해 '컵라면 반입 금지'의 이유를 묻고자 강서도서관의 행정지원실을 찾았었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강서도서관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현재 도서관의 행정책임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성 직원은 그 이유에 대해 처음에는 아이들의 건강에 컵라면이 해롭기 때문에 금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그러한 이유가 도서관 또는 서울시교육청의 공식입장인가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명확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또한 뜨거운 물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컵라면 금지의 이유를 두 가지로 늘렸다. 그와 대면하기 직전에 구내식당 주변을 둘러본 나로서는 그 해명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며 컵라면이 해로운 것이라면서 구내식당에서는 라면을 끓여서 판매하고 있었으며 그 내용물의 뜨거움은 컵라면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

 

더욱이 구내식당의 입구에는 세 대의 자동판매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몸에 유익 할리 없는 커피와 콜라 등의 탄산음료를 얼마든지 자유롭게 마실수 있는 환경을 방치하고 있는 도서관측이 컵라면 반입을 금지하는 이유가 구내식당을 맡아 운영하는 사기업의 상업적인 이유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컵라면이라는 것은 -설령 아이들이 라면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 그것을 주식으로 먹는 입장에서는 가난의 상징일 수도 있다.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이 도서관에 와서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돈 없는 젊은이 역시 그러하며 해고 등을 당한 성인이 실업자의 신분으로 도서관에 와서 책을 보거나 미래를 준비하며 보내기도 할 것이다.

 

들 중 정말 돈이 없어 1천 원 안팎이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컵라면을 찾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뜨거운 물까지 제공하는 편의점은 컵라면의 가격이 조금 더 비싸고 인근의 중소 할인점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지만 뜨거운 물을 구할 수 없다. 이렇게 1백 원이라도 절약(또는 돈이 없어서) 하려는 사람들이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도서관에서 컵라면을 먹는 일이 어째서 금지되어야 하는가. 물론 복도에 냉온수기가 있으니 그 물을 받아서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왜 굳이 구내식당의 물을 받아야 하냐고 항변할 수 도 있겠다.

 

하지만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이 걸인이 아닌데 어째서 복도나 도서관의 구석진 자리, 또는 한파에 벤치에 앉아서 먹어야 하는 것인가. 이들은 당연히 당당하게 공공도서관의 식탁에 앉아서 자신이 구입해 온 컵라면을 먹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의 출범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하나의 운영주체가 있는 것보다 복수의 기업이 존재하는 것이 '경쟁'을 통한 서비스 질 향상으로 이어져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정부는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궤변이자 자가당착의 모순을 스스로 실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경쟁'이라는 것은 시장경제의 핵심적인 요소이므로 이러한 방식이 도입된다는 것은 결국 '이윤' 극대화에 몰입하겠다는 뜻이라는 것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두 기업의 경쟁은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해당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며 인건비 절약을 위한 비정규직의 확대는 물론이고 경쟁에 이긴 업체(들)이 독(과)점을 형성해 가격 인상과 함께 운영방식 또는 노선 등의 결정에 소비자가 끼어들 틈이 없는 구조로 변하게 된다. 결국 승리한 기업이 독점을 하게 되어 아무런 장애물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이윤을 위한 운영에 매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인 국민에게 돌아온다.

 

공공부문의 업무라 하더라도 전문적인 민간단체 등에 위탁을 함으로써 효율성 제고와 더불어 공공성의 확보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기관의 필수적인 업무는 굳이 외부에 위탁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구내식당은 공공도서관의 필수 시설이므로 따로 떼어 위탁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운영의 합리화라는 이유와 전문적인 외식업체의 도입으로 식사의 질을 향상하려는 것이라는 핑계를 대며 사기업에 위탁(즉 민영화)하는 이유는 사기업의 이윤을 둘러싼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공기업의 존재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공공성의 담보다. 지난해 문제점을 지적했었지만 보란 듯이 아직도 경고문이 붙어있어 공공도서관의 주인인 시민이 자기 마음대로 먹을 것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는 현상을 바라보며 철도 민영화가 겹쳐진다. '컵라면 반입 금지'는 철도 민영화의 미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