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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시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교육선전국장 직책을 끝맺으며

  2008년 4월 22일부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 사무처 회의가 열렸는데 첫 회의때부터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위원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사무처장은 고개를 푹 숙인채 회의 내내 말도 없이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 광경은 11월 서비스연맹의 한바탕 회오리가 몰아치던 그날까지 7개월여 지속되었다.

 연맹 업무와 분위를 채 파악하지도 못했던  때인 11월 하순 연맹 임시대의원대회가 열렸다. 내가 배우고 신념으로 여겼던 민주주의의 원칙이 민주노조 안에서 무너지는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임원간의 불화와 산별을 완성하지 못한것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무처장과 부위원장들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어 위원장에게 사퇴 의사를 물었고 잠시 휴회 뒤에 위원장은 사퇴를 선언하고 회의장을 나갔다. 책임을 지고 사퇴한 임원들 중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2009년 3월 위원장과 임원들의 사퇴로 공석인 연맹 보궐선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던 당사자들이 출마를 했고 당선됐다. 결국 기존의 사무처장이 위원장으로 부위원장은 다시 부위원장이 되었고 위원장만 물러나게 된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 전 위원장이든 사무처장이든 나는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임원 중에서 다시 위원장과 임원 보궐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내가 40년 넘게 살아온 가치에 혼란을 가져왔으며 서비스연맹에서 일하고 있는 의미 자체를 뒤 흔드는 것이었다. 주권자인 조합원들을 대신해서 참석한 대의원들이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는것은 민주노총과 민주노조에 대한 나의 환상이 한순간에 박살이 나는것이었다.

 이건 아니다 하면서도 최소한 민주노총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인 정의감과 노동관이 있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말대로 전 위원장 한사람에 의해 엉망이 된것이 맞다면 연맹을 바로 잡기 위한 사업, 즉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체질을 바꾸고 뿌리를 튼튼히 하고 토양을 다지는 그런 사업들이 진행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나의일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불과 두세달도 지나지 않아서 깨지기 시작했다. 보궐 집행부로서 다음 선거는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토대를 다지고 뿌리를 내리는 혁신 사업을 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눈 앞의 현상들에 매달리는것으로 보였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수단의 정당성과  절차가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내가 연맹에  일하는 첫째 이유는 내가 겪었던 아픔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게 미력하나마 최선을 다해 복무하기 위함이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어제의 말과 오늘의 말이 다르며 눈 앞의 현상들에 치중하는..... 이런것이 노동운동이라면, 이런것이 노동조합이라면, 이런것이 민주노총이라면 ...... 나는 내 동료들을 노동조합으로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싸워야 하니까 싸우는것이고 설령 모두 해고 되는 한이 있더라도 민주노총의 동지들이 있으니 우리 조금만 더 버티자는 나의 말을 믿고 함께 싸우던 동지들에게 나는 지금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그들을 만나도 유구무언이다.

 물론, 목숨 걸고 싸웠거나 아직도 싸우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그 분들에 비하면 우리의 투쟁시간들은 별것이 아닐수도 있다. 그러나 투쟁 끝난지 2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우리 노동조합의 부위원장이었던 동지가 그때의 괴로움과 스트레스로 인해 당뇨병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을 전해들으며 내 마음은 찢어질듯이 아프다. 해골 두쪽 나도 동지와의 약속은 지키겠다며 동참을 호소했던 나는....위원장이었던 나는 그를 위해 해 줄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 노조같은 불행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들어온 서비스연맹. 지금은 교육선전국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이 순수한것이었는지, 아니면 바보같은 생각이었는지 이곳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하루 하루 성과를 보여주고 그럼으로 인해 무탈하게 지나가면 그만인...

 이곳에서 함께 하는 한 나는 이전의 나의 동지들에게나 지금의 연맹 내 조합원들에게 거짓투쟁을 선동하는 일에 부역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는 더 이상 내가 처음 이곳에 들어올때의 희망을 지킬수 없다는 생각이 점점 깊어진다. 서비스연맹의 교육선전국장으로서, 사무처 성원으로서의 문제 제기는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다. 공식적인 문제제기는 임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인것이다. 심지어 신랄한 비판 발언을 막기도 하는 일이 벌어지는곳이 이곳이다. 민주노조로서의 기본을 세우는 교육사업을 진행하겠다는 목표와 달리 연맹의 기본과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정책이 세워지지 않음으로 인해 업무의 방향은 점점 틀어지기 시작했다.

 '노동'이 무엇이고 '자본'이 무엇인지, 왜 자본과 투쟁을 해야 우리들 삶이 인간다워 지는것인지에 관한 본질적 고민과 운동방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조합원들의 투쟁을 이끌기 위한 진지한 고민따위는 적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일상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그것을 투쟁이라고 주장했다.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짐으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비롯해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연맹의 임원은 내게 병원 진단을 받아보고 결단을 내려 거취를 결정하라고 했다. 진단서를 첨부해서 정당한 병가를 내기위해 병원을 찾았으나 검사비가 140만원이라는 말에 한숨만 쉬며 발길을 돌려야했다.

 몸이 나아지는 방법은, 그러려니 하고 살던가 아니면 상황을 바꾸던가 둘 중에 하나였다. 의사는 연맹을 그만 두면 몸이 더 심각해질것이라고 경고했다. 내 몸이 나아지는 길은 업무를 제대로 하는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식적인 회의석상에서의 문제제기는 사무처 내의 상명하복의 체계 안에서 묵살되기 일쑤였고 직책을 유지한 채로는 서비스연맹을 바꿔나가는데 한계가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 상태에서 일단 깨끗하고 당당하게 위원장과 대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2010년 1월 19일 사직서를 앞에 놓고 위원장과 3시간여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민주적 원칙에 입각한 투쟁과 연맹의 발전을 위한 진지하고 충심어린 사업의 당위성을 토로했다. 보여주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기본적인 토대 마련을 역설했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외형적 사업을 계속 진행한다 하더라도 그와 병행해서 뿌리를 다지는 작업은 중장기적으로 지금부터 시작해야함을 가슴을 열어 털어놨다. 위원장은 나의 고민등을 담아서 주변 의견을 청취한 후에 제시할테니 3~4일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주변 의견을 청취하지 않았음은 얼마 뒤에 알게 되었다.

 1월 25일 사무처회의가 끝난 후 위원장이 보자고 했다. 국장님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위원장의 말에 순간 원칙과 정책을 바로 세우는 사업을 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그것이 착각이라는것은 곧바로 이어진 "말일까지 근무하고 내일부터 근태는 자유롭게 하라"는 짦은 말에 의해 알게되었다. 일 할 자리 알아봐 주겠다는 그의 말을 뒤로하고 그 방을 나왔다.(그는 그말을 왜 했을까...)

1월 29일 짐을 챙겨 연맹 사무실을 나왔다. 송별회 언제하면 좋겠냐는 동료들의 말을 뒤로 하고....

서비스연맹을 나오는 것은 현장 동지들과의 인연이 끝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노동자들과 함께 제대로 된 투쟁을 하기 위한 재충전 준비의 기간이며 새로운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