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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미안해요, 리키 - 사는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영화 'Sorry We Missed You' (미안해요, 리키)

 

 

 

리키는 택배 일을 하는 노동자로 게으르거나 꾀를 부릴 줄 모르는 성실한 사람이다. 배우자 애미 역시 하루 14시간 이상 일하며 늘 웃는 얼굴인 출장 요양보호사다. 두 사람의 삶의 태도를 보면 부자가 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택배 노동자의 고된 노동이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이자 비정규직의 원류인 영국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공감률은 백 퍼센트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판박이니까.

 

비정규직 형태의 고용 관계는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몸과 정신은 물론 경제적인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인생과 돈 모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정신없이 막아보려 애쓸수록 소모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새벽 별 보기 운동'하듯이 일에 치여 사는 부부 탓일까.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사이 왠지 엇나가기만 하는 사춘기의 아들에게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해보기를 권하는 부모에게 돌아온 대답은 "대학에 가봤자 빚만 지게 될 뿐 아니라 직업도 변변하게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아들의 묵직한 말이었다.

 

하루 14시간 넘게 일하며 결국 남의 종이 된 자신처럼 살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야 한다는 아빠의 충고에 아들은 "아빠가 선택한 삶 아니냐"고 되묻는다. 아빠의 직업은 본인이 선택한 것 아니냐는 물음이다.

 

 

 

 

 

 

아마 대한민국의 많은 노동자도 자신이 직업을 선택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아들의 대사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 하고픈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들 지금의 직업을 스스로 선택한 것 같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당신들은 누군가에 떠밀려 힘든 삶을 사는 거야." 

 

이들의 답답한 일상을 지켜보는 관객 입장에서도 한숨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영화는 결국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며 슬픔을 목으로 삼킨 채 운전대를 잡는 택배 노동자 리키의 모습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특별하게 설득하려 하거나 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한 가정의 모습을 희망도 절망도 아닌 채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으로 켄 로치 감독은 자신의 웅변을 묵언으로 대신한다.

 

예전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교실 앞으로 나오게 해서 서로의 뺨을 치도록 지시하는 선생도 있었다. 둘 중 상대를 약하게 때리는 학생은 선생의 몽둥이찜질을 당하기도 했다. 선생의 폭력을 피하려면 일단 살고보자는 심정으로 친구의 얼굴을 갈겨야 했다.

 

비정규직은 자본주의로서는 신의 한 수다. 가장 자본주의적이면서 악랄한 방식으로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을 서로 때리도록 강요해 가만히 앉아서 이윤을 챙긴다. 경쟁에 이겨 살아남는 노동자라고 해도 근근이 버틸 뿐 삶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리키 역시 주어진 물량을 벅차하다가 쫓겨나는 신세에 놓인 동료의 택배 노선을 맡은 것이지만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어 대신 빈 병을 차에 가지고 다닐 정도였다. 어느 날 리키는 아내에게 고백하듯 탄식을 뱉어낸다.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아내 역시 마음 속으로 응답하지 않았을까. "나도 몰랐어"라고.

 

 

 

 

 

 

쫓기듯 힘들어하는 그를 보며, 또한 유대감이 조금씩 옅어짐을 몸으로 느끼며 가족들은 리키에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것을 호소한다. 하루빨리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물차를 구입하고 몸을 혹사하는 그의 모습을 완전히 이해해 주기에는 모두가 힘들고 지친 상황이기에 서로를 놓치기도 한다. 어쨌든 영화의 제목은 <Sorry We Missed You>이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돈이 부족하거나 몸이 고단하고 병드는 것에 있지 않다. 더욱 근본적인 해악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깨버리는 파괴성에 있다. 관계의 단절은 결국 가정의 해체로 이어져 모두를 외톨이로 만들어버린다. 

 

영화에서 가족은 때로는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시 손을 잡아 일으켜 주기도 한다. 리키와 애미는 사소한 불평은 할지언정 언제나 사업주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고 자신의 노력을 증가시킨다.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로 이루어진 네 사람은 그래서 보는 이의 감정을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아마도 감독은 이들 주인공이 언제쯤 사회 구조에 눈을 돌리고 인간의 존엄함을 생각하게 될 지 물끄러미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에 반해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가족은 서로 비난하거나 탓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려오기 전에 이미 다 겪었기 때문일까.

 

 

 

 

 

✲ 부천시에서는 해마다 노동영화제가 열린다. 여러 단체가 각기 영화를 선정해 상영하는 행사를 하는데 올해 7회째를 맞았다. 이 중 '평화미래플랫폼 파란', '마을문화 공간 뜰 작'이 공동 주관한 영화 <미안해요, 리키>가 '뜰 작'에서 상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