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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시사

시간을 돌 보듯 하라는 대통령

 

대통령은 연일 노동개혁을 부르짖습니다. 여당의 대표와 정부기관들, 자칭 언론과 학자라는 사람들까지 나서서 개혁, 개혁을 외칩니다. 왠일일까요? 노사정위원회의 논의가 진척을 보이지 않자 급기야 안달 난 사람들처럼 좌불안석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기사참조> 노사정 8인 연석회의 개최

 

<기사참조> 박대통령, 노동개혁 결단 촉구

 

 

 

'노동개혁' 용어에 감춰진 사기

 

'시간은 금'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한한 생명을 지닌 인간은 24시간씩 삶이 지워지고 있으므로 시간은 금조차도 비교가 불가능한 절대적인 것입니다. 한사람이 평생 동안 쉬는 숨의 횟수는 정해져 있다고도 합니다. 호흡이 빠른 사람은 여유로운 숨을 쉬는 사람에 비해 명이 짧을수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하루 8시간 이내에서 여유롭게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는 노동자에 비해 초과근무와 야간근무를 밥먹듯이 하며 빨리빨리 더 일해야 하는 노동자의 수명은 짧아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노동강도에 따른 임금의 인상분은 어거지가 아니라 목숨과 맞바꾸는 가슴 아픈 돈일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의 의견도 있습니다. 한 역사의 인물의 말씀을 인용하며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인데, 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정치가나 재벌 등의 기업 자본가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말씀입니다. 먼 미래의 비전을 보고 직업을 선택해야지 돈을 좇아 직장을 구하면 안된다는 훈계를 하기도 하는데, 그러다가도 3D 업종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에게 아무 일이나 할 것이지 뭘 고르는 것이냐고 혼내기도 합니다. 이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들은 말리는 시누이와 같은 역할의 학자와 자칭 언론들 입니다.

 

'신자유주의'라는 뜻의 정확한 의미는 모르더라도 이 단어를 들어보지 못 한 국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자유주의라는 뜻인데 여기서 자유란 정부의 규제로부터 기업(특히 재벌)들이 맘놓고 돈 벌 자유를 말합니다. 이사람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만 국민들(특히 노동자)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용어와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는 기업들이 때만 되면 누군가의 치맛자락을 붙잡는다는 것입니다. 멋지게 운전하던 남성이 사고를 낸 후 어린아이로 변해서 "엄마 나 어떡해~" 라며 울먹이는 광고처럼 우리의 기업들은 노동자와 상관 없이 자신들만이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고 있기라도 하는양 거드름을 피우다가도 정권을 향해 "우리 어떡해~ "라고 울먹이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엄마와도 같이 등장한 정부는 노동자들을 향해 무쇠팔 주먹을 휘두르며 위협을 가합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에서는 자유를 외치던 기업들은 상황에 따라서는 말을 바꿔 정부의 보호를 요구하며 개입을 호소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1770년의 영국, 2015년의 대한민국

 

노동유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전문가들이 여기저기 등장합니다. 노동자들을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자유를 일반인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그럴듯한 단어로 포장한 것이 노동유연화입니다.

 


1770년대, 자본주의가 뿌리 내리던 시기의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세력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이에 논리를 만들어 제공하는 학자들은 큰 역할을 했습니다만 반대로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충분한 휴식과 여가를 누릴수 있어야 좋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며 노동시간의 연장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휴식과 여가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

 

유감스럽게도 나는 우리 영국 노동대중의 영구적인 노예상태를 위해서 창을 준비하는 위대한 정치가와는 견해가 다르다. 지금까지 영국의 수공업자와 매뉴팩처 노동자의 독창성과 숙련은 영국인들의 자랑거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독창성과 숙련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아마도 우리의 노동대중이 자기네만의 특유한 방법으로 기분을 푸는 것 이외의 어떤 이유도 없을 것이다.

 

 

▶ 노동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

 

만일 한 주의 일곱 번째 날에 쉬게 하는 것이 신의 섭리라면, 그것은 나머지 요일은 노동에 속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의 명령을 강행하는 것이 잔혹하다고 질타해서는 안 된다. ..... 대체로 인간이 천성적으로 안락과 나태함을 즐긴다는 것은 불행하게도 우리들 노동자대중의 행동으로부터 경험하는 터이고.

 

 

 1770년대에 제기되었던 위의 상반된 주장은 201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진행중입니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2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구조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본을 쥐고 있는 기업들은 정치권력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노동자의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이윤을 늘릴수 있다는 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교훈은 인간답게 사는 것을 버린 채 물질을 좇지 말라는 의미 일것입니다. 하지만 그 뜻은 교묘하게 악용되어 돈을 바라고 일 하지는 말라는 지침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 말을 했다고 하는 역사의 인물이 살던 시대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으며 노동이 곧 돈으로 환산되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즉 모든 것이 돈(즉 시간)으로 환산되는 시대이며 시간을 내어 준다는 의미는 노동자의 목숨과 돈을 잃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고 반대로 그 시간을 가져가는 사람들은 돈(즉 이윤)이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황금을 돌 보듯 하라며 노동자들에게 훈계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은 귀하게 여기며 품 안에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동자들의 임금 10원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목에 핏대를 올리며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고통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염치마저 사라진 한국식 자본주의의 민낯

 

정확히 말하자면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그릇을 덜어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주라는 말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 고통을 분담하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훨씬 더 많은 몫을 챙기고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어째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고 다른 세계의 사람들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동자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싸움 붙이려는 자들이 귀족노조라며 흠집내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누가 뭐라해도 자신의 몸에 기름때 묻혀가며 밤 새워 '노동'하는 노동자들입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가만히 앉아서 년간 수 억원~ 수 천억원의 재산을 불리는 사람들이 먼저 고통 분담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편법으로 물려 받아 쉽게 축적한 사람들, 1년에 몇 번의 회의에 참석하고 수 천만원에서 수 억원 이상을 받아 챙기는 재벌기업의 이사들, 노름판과 다름 없는 주식놀음으로 쉽게 돈을 쌓은 사람들과 그 떡고물을 받아 먹는 자들은 귀족노조를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불로소득자들에게 최우선적으로로 고통 분담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헌법 준수를 다짐하며 대통령 선서를 했던 자의 최소한의 양식일 것입니다. 노동자들을 향한 호소는 그 다음입니다. 그러한 고려도 없이 발언하는 것이라면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에 미달하는 것이므로 물러나야 할 것이고 의도적으로 노동자들을 겁박하는 것이라면 국민을 분열시키며 헌법 질서를 어긴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박탈되어야 마땅합니다. 예전에는 흔하게 쓰였던 염치라는 단어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인타임(In Time)'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모든 상품의 값을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의 시간으로 지급(차감)합니다. 우리는 무한한 생명을 얻은 것처럼 살아갑니다. 정말 그렇게 살아도 좋은 것일까요?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귀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영화 '인타임 In Time'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