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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법

대한항공 사건,「근로기준법」상 폭행죄에 해당한다

사진출처: 한겨레신문

뉴욕의 공항에서 항공기의 운항을 방해하고 승무원인 직원들에게 폭행을 가한 혐의를 받고 있는 대한항공의 젊은 부사장 관련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재벌 3세인 그녀가 임원으로서의 자격이 있느냐 하는 문제부터 검찰에 출석할 당시의 의상까지 일거수 일투족이 세간에 좋은 입방아 재료를 던지고 있다. 검찰은 가해자로 지목된 그녀의 혐의를 확신하고 법원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고 한다. 적용되는 죄가 여러 가지라고 하는데 모두 항공기의 운항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1974년 제정되어 최근까지 여러 차례의 개정을 해 온 항공보안법은 항공기와 그 승객이 범죄의 대상이 될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특수성을 감안하여 강력한 처벌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다. 이 법의 주요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운항중 : 승객이 탑승한 후 항공기의 모든 문이 닫힌 때부터 내리기 위하여 문을 열 때까지 (2)

불법방해행위 : 항공기의 안전운항을 저해할 우려가 있거나 운항을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 (2)

승객의 협조의무 : 항공기의 보안이나 운항을 저해하는 폭행 협박 위계행위, 업무방해 금지 (23)

항공기납치죄 :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항공기를 강탈하거나 그 운항을 강제한 사람 (40)

직무집행방해 : 폭행 협박 또는 위계로써 기장 등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하여 항공기와 승객의 안전 저해 (43)

 

직무집행 방해의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등 중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으나 실제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 법이 범죄에 대해 강한 처벌을 규정한 이유는 장소가 '항공기'라는 특수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시각을 돌려 부사장과 승무원의 일대 일 관계에 맞추게 되면 우리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사건의 장소가 운항 중인 항공기 안이라는 사실을 약간 변경하여 일반 회사나 공장, 또는 서비스 직종의 사업장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우리 사회는 역시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다중이 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는 비행기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대중은 분노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부사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약자인 직원에게 폭행과 모욕을 준 행위에 대한 분노인가.

 

전자는 공공의 안녕에 무게를 두는 생각일 것이고 후자라면 승무원 개인에 대한 동정과 공분의 차원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더 생긴다. 우리 사회가 공공의 안녕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날마다 쏟아지는 뉴스들을 잠시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동선에 위험을 무릅쓰고 시야를 가리는 거대한 상업건물의 건설과 영업을 허가해 준 일에 대해 소수의 '염려증' 많은 사람들만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그렇다. 승무원 개인이 직장 상사인 부사장에게 모욕을 당한 것에 대한 공분이라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부사장급의 고위 임원은 고사하고 그 한참 아래인 중간 또는 말단 간부에게조차 모욕을 당하는가 하면 비정규직의 노동자에게 정규직의 노동자가 하대와 폭언을 하는 일 따위는 사건도 아니고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이번 대한항공 부사장의 사건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법조항들은 항공기가 개입되어 있으므로 처벌 수위가 높은 편이다. 여기서 항공기를 제외시킨다면, 그래서 사람과 사람인 부사장과 승무원 둘의 관계로만 본다면 어떤 처벌이 내려질까? 일반 직장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파일 모서리 등으로 툭툭 치면서 고함을 지른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형법상 폭행죄의 처벌규정은 '2년 이하의 징역' 이나 '5백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처분이다. 비행기가 아닌 일상에서 벌어지는 폭언과 폭행에 대해서 눈감는 언론과 사회가 이처럼 분노의 화살을 쏟아내는 현상은 승무원이라는 대리인을 통해 그동안 쌓였던 자신들의 감정폭발이거나 새로운 가십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근로기준법8조는 노동자가 사고를 일으키는 등 큰 잘못을 저지른 경우라 해도 사용자가 폭행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가 정말 미운 짓을 한다 해도 폭행을 금지하겠다는 이 법의 취지를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전근대적인 신분제 사회의 요소를 그대로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직원을 때리는 사장이 있을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권위가 있다고 알려진 한 노동법교과서의 저자인 학자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노사관계가 사업장에 따라서는 봉건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까닭에' 이 조항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사무장을 비롯한 승무원이 젊은 부사장에게 무릎을 꿇은 이유가 그녀의 고함과 폭언이 무서웠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용자는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는 지존이기 때문이다. 뒤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퇴근 후 술자리에서 안주 삼을 수는 있지만 앞에서는 감히 대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대상이 사용자 아닌가.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던 사무장이 흘린 눈물은 아프거나 슬퍼서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무릎을 꿇어야 하는 이 사회에서 약자인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재벌3세를 비웃고 비아냥거리는 식의 감정 소비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 사용자가 때리려 하면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호통을 칠 수 있는 노동자, 항공기를 돌리라고 명령해도 권한에 의해 이륙 시킬 수 있는 조종사가 될 수 있다면 말도 안되는 뉴스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운 일도 사라질 것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사용자와 존엄한 인간으로 당당히 설 수 있을 때 공화국인 대한민국의 민주는 바로 서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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