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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노동

노동인권과 법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가 주최한 참교육실천한마당에서 '노동인권과 법'의 주제로 발표한 내용을 올립니다.



2017년 참교육실천한마당이 열린 성남 보평중학교 교정









노동과 인권, 그리고 법







Ⅰ. 문제인식


직업계고[각주:1] 학생들의 현장실습은 말 할 것도 없고 ‘알바’라는 단어가 흔하게 쓰일 정도로 많은 청소년들이 노동 현장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사회 경험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노동을 해봄으로서 땀의 가치를 알게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조금만 생각을 더 해보면 그와 같은 말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우리 사회 곳곳의 노동 환경에서 청소년들이 과연 미래의 꿈을 키우고 사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가지게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청소년을 고용하는 이유는 사용자들 간의 무한경쟁에 의한 인건비 절감에 있을 뿐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요인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성인 노동자들조차 열악한 조건에서 묵묵히 일해야 하는 것이 세상의 흐름인 만큼 노동 현장에서 불평 하거나 편한 일자리만 찾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는 식의 훈계는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 입장이라면 뱉을 수 있는 말이지만 스스로의 임금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 또는 자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서민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1인당 GDP가 2만5천 달러를 넘어서는 비교적 잘 살아야만 합당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자신의 무능함을 원망하며 묵묵히 일하고 있다고 해서 청소년들에게 같은 삶을 강요할 수는 없다. 오히려 미래의 싹인 청소년들만큼은 기성세대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성숙한 자세일 것이다. 그 전제로서 성인들의 삶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전제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노동자들은 30~40 대의 나이에 자신에게 닥친 해고 위협을 벗어나고자 급하게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가입을 시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기본 없이 급조된 노동조합을 통한 승리는 불가능에 가깝고 개인이 권리를 회복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노동조합 설립 후 탄압에 맞선 투쟁 과정 속에서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법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법을 통한 권리 회복보다는 패배의 아픔을 맛보는 일이 더 많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개인으로서의 노동자가 법적 투쟁으로 권리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는 말 할 나위조차 없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기본적 권리를 확인하고 보장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헌법이 선언하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헌법과 법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길래 그와 같은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인지 몇 개 조항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과연 노동자에게 법이란 무엇이며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를 짚어보고자 한다.



Ⅱ. 살펴 볼 점들


1. 헌법과 노동법의 관계

 

단지 조항의 규정들을 암기하는 식으로는 노동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헌법의 기본 정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前文)을 통해 그 기본 정신을 밝히고 있으며 여기서의 주체는 국가가 아닌 '국민'이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균등하게 사는 것을 넘어 지금보다 나은 삶, 즉 '향상'된 생활이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여러 곳에서 '인간다운' 삶, '존엄성'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각주:2] 그렇다면 최저임금은 과연 인간의 존엄성과 실질적인 생활보장에 도움이 되는 액수인가?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긴지 오래임에도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삶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헌법 130개 조항 중에서 노동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두 개의 조항이다. 제32조와 제33조가 그것인데 제32조는 개인이 취업을 한 후 사용자와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황들을 정하고 있는 것으로서 바로 이 조항에 의해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각주:3] 하지만 근로기준이 지켜지지 않아 불이익을 당하는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직접 항의를 하거나 법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 해고를 비롯한 위험에 처하기 때문에 헌법은 제33조를 통해 많은 수의 노동자가 뭉쳐 '노동조합'을 통해 실질적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각주:4] 파업까지도 허용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가치 질서를 지키지 않은 기업이 사회 전체로서는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며 이 점은 헌법 제119조 제2항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몇 개의 조항을 통해 살펴보기


노동인권은 법 제도의 문제인가?


최근 들어 노동인권이라는 단어가 세간에 많이 회자되고 이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 의해 교육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여기서 노동인권은 무엇인가? 노동은 무엇이고 인권은 무엇이며 두 단어를 합친 노동인권은 단순히 단어의 조합인가? 라는 주제를 법과 관련지어 생각해보고자 한다.

인권 문제는 사람이 살아가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삶을 침해당하는 것으로부터 대부분 발생하게 된다. 노동 문제는 당연히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그에 관한 해결 원칙 역시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을 두고 있다.

이에 헌법을 비롯해 노동인권을 주제로 진행되는 교육에서 언급되는 근로기준법과 노동3권의 의미들을 짚어봄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하고 있는 임금노동자의 인권 문제는 무엇이 있으며 왜 불거지는가, 또한 노동인권을 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실정법의 한계를 어디까지 보고 있는가, 즉 법이 인권인가에 관해 짚어보고자 한다.

무엇이 노동인가, 근로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 즉 노동을 바라보는 철학이 어느 정도로 인간 중심적인가의 여부에 의해 자리매김 될 것이다.



▩ 근로의 권리


헌법 제32조 제1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 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


헌법은 '근로'를 국민의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누구나 배웠을 내용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근로가 국민의 권리이므로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제공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갈수록 실업자가 늘어나는 사태에 대해 국가는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재벌기업 등 사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늘리고 고용안정을 유지하도록 방향을 잡아줘야 할 의무를 국가에 부여했지만 정부는 늘 뒷짐 진채로 있다.


논점


  • 근로란 무엇인가.
  • 국가는 왜 근로를 권리로 정해 놓았는가.
  • 사회적 방법과 경제적 방법은 무엇인가.
  • 적정임금은 어느 정도인가.
  • 최저임금제는 어떤 법률에서 정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위 다섯 가지가 헌법 제32조 제1항과 관련해 생각해 볼 문제들이다.



가) 근로[각주:5]


'근로의 권리'란 자신의 일할 능력을 임의로 상품화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한다. 일할 권리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자신을 판매할 권리라는 뜻이다. 노동자가 노동능력을 판다는 것은 곧 누군가가 지급하는 임금을 받기 위해 취업하는 것을 의미하며 근로자란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인데 여기서 근로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각주:6] 그러므로 근로자가 임금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취업해야 한다. 


나) 국가가 근로를 권리로 정한 이유


노예는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노역의 결과물인 자신의 생산물을 모두 빼앗긴 후 주인이 나눠주는 밥을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주인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어느 직업이든 택할 수 있고 노동의 결과물인 임금을 받아 각자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한다. 

헌법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근로를 권리로 정하고 있는 동시에 의무로도 규정하고 있다. 국민들이 근로자로서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기업이 생산을 할 수 없게 되며 국가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즉 한사람의 노동자가 행하는 노동은 개인의 삶을 유지하는 수단인 동시에 사회가 원활히 운영될 수 있게 하는 동력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노동은 개인적인 역할을 넘어 사회적인 것이다. 문제는 노동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 밥을 굶거나 생존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스스로 근로의 권리를 행사해 알아서 해결해야 하며 권리를 행사하지 못 할 처지에 놓인 사람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다) 사회적 경제적 방법


헌법은 국가가 고용을 증진하는 한편 적정한 임금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해서 국가는 고용정책과 노동정책 사회정책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근로의 권리는 국가가 고용증진정책, 임금정책, 남녀고용평등정책, 노사분쟁 조정, 직업훈련계획, 실업대책, 산업재해대책 등을 마련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라) 적정임금


적정한 임금에 대해 우리 헌법과 법률은 따로 정해놓은 것이 없다. 사용자와 노동자 둘이 알아서 정하라는 것인데 이와 같은 제도 안에서 노동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은 고사하고 현상유지조차 힘든 것이 현실이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는 경우에 임금을 지급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과거의 대법은 판결은 파업하는 기간 동안 노동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용자는 노동자의 노동력(즉 사람 자체)을 구입한 것이므로 밥은 먹게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무노동 무임금으로 바뀌게 되어 파업기간에 임금을 지급하지 말도록 하고 있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세 가지 요소는 토지와 자본 그리고 노동이다. 기업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땅을 구입하고 공장을 짓는 동시에 기계를 구입하고 생산재료도 산다. 생산된 상품에 매겨지는 가격에는 위 두 가지 요소의 가격이 포함된다. 빵 100개를 생산할 수 있는 제빵기계의 경우 빵 1개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100분의 1이 소모된다. 이 경우 제빵기계를 구입하는 기업은 향후 100번을 사용할 값을 미리 지급하고 공장에 들여오게 된다. 이 기계를 만들기 위해 철을 생산하고 부품인 볼트와 너트를 생산하는 등의 모든 공정이 값으로 매겨져 제빵기계의 최종가격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요소 중 하나인 노동자의 임금도 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결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노동자가 태어나서 먹고 마시고 수면을 취하면서 육체적으로 성장하기까지 들어간 비용은 물론이고 직업에 적합한 지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 소요된 교육비 등 노동자로 되기까지 들어간 모든 비용이 임금으로 책정 되어야 한다. 또한 노동자가 퇴직 후 삶을 마칠 때까지 살아가는데 필요한 비용도 임금에 포함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본가는 노동자가 퇴직한 후에는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근무기간동안 모든 노동력을 뽑아 썼기 때문이다.



▩ 근로의 의무


헌법 제32조 제2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



문제제기


헌법은 '근로'를 국민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근로자란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하며 여기서 근로란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행위다. 일하지 않고 굶는 것도 개인의 자유라고 볼 수 있는데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근로를 의무로 정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가 힘든 일을 기피하거나 육체노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면 사회와 국가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인류 자체가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누구라도 노동을 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인데 문제는 노동의 개념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재테크를 통해 돈 버는 것도 노동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한 관점이 될 것이다.


논점

  • ‘모든’ 국민의 범위
  • 근로의 의무
  • 민주주의 원칙


가) 모든 국민의 범위


‘모든’ 국민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가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하고 있다. 「국적법」에 의하면 출생, 인지, 귀화 등을 통해 국민이 될 수 있다. 국가의 통치권에 복종할 의무를 가진 개개인의 집합을 의미 한다고도 하며 국가를 형성하는 사실상의 구성요소로서 국가창설, 국가의 정당성부여 및 국가 활동의 근원적인 단위가 되는 것이라고도 한다.


나) 근로의 의무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국민에게 부여된 근로의 의무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헌법이 근로의 의무를 규정한 이유는 근로의 의사가 없는 국민에 대해서까지 국가가 생존권을 지켜줘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있다. 근로할 능력이 있음에도 취업하고 있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사회보장적 국가 급여 지급을 막기 위해 이 조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근로의 의사는 있지만 국가의 일자리 마련 대책의 미비 등 여러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므로 놀고먹으려는 사람은 보호해 주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각주:7]

그렇다면 투기 등의 방법으로 돈 버는 사람들의 행위는 헌법 가치에 비춰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투기행위가 정상적인 경제 활동인 양 정부가 나서서 왜곡된 교육을 주입하고 있는 현실은 그러므로 반 헌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초등학생 등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자료 조차 투기를 통한 부의 획득을 정당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는 현실은 노동의 가치를 왜곡해 바라보게 하는 등 매우 심각한 문제다.[각주:8]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으므로 근로의 의무에서 자유로운 국민은 있을 수 없다.

이 조항에서 말하는 민주적 원칙이란 강제노역을 시키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각주:9]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생필품을 얻기 위해 임금을 받아야만 하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취업을 하지 않는 사람은 굶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취업을 하지 않을 자유도 있지만 굶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다) 민주주의 원칙


강제노역을 시키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취업을 하지 못하면 굶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직업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 몸이 망가질 것을 각오 하면서 투잡을 해야 한다면 강제노역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결국 '근로의 의무'를 바라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눈, 즉 노동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철학이 얼마나 인간 중심인가 하는 여부에 의해 경제적인 민주주의의 기준점이 달라질 것이다. 문제는 노동 하지 않고 부동산이나 주식 투기를 통해 놀고먹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현실이다. 그들은 근로의 의무를 면제받은 것일까? 대한민국은 사유재산이 인정되므로 노동 하지 않고 투기를 통한 부의 획득, 증가가 용납될 수 있는 것일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교육자료에서 조차 투기를 통한 부의 획득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이라고 소개하고 있을 정도이니 헌법의 '근로의 의무'를 부담하는 사람들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보게 된다.




▩ 근로조건의 기준


헌법 제32조 제3항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논점

  • 근로조건
  • 근로조건의 기준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인간의 존엄성

가) 근로조건


임금을 목적으로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능력을 팔아야 하는 노동자는 약자 입장일 수밖에 없다.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인간다운 삶이 유지되도록 정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작성하는 근로계약서에 임금과 노동시간, 휴게와 휴가 등 기본적으로 19가지 사항의 근로조건들 명시하도록 하고 위반 시 5백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근로조건 중에서 노동자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단 한 가지라도 있을지 의문이다.


나) 근로조건의 기준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근로조건은 양 당사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4조). 이 조항의 내용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에 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들조차 코웃음 치는 우리의 현실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다) 인간의 존엄성


헌법은 여러 곳에서 ‘존엄성’을 언급하고 있다. 임금을 포함한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온 가족이 함께 앉아 마음 편하게 밥을 먹는 횟수가 1년에 몇 차례나 될까. 월급을 받는 노동자가 다음 월급날 훨씬 전에 돈이 바닥나는 현실을 보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고사하고 생존마저 위태로운 것이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줘야 할 기본적인 규범인 <근로기준법>은 스스로 최저기준임을 천명하고 있다(제3조). 그러니 법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며  국가가 정책을 만들어 시행해야 하는데 그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고용노동부가 그렇게 할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길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노동자 입장에서 믿을 것은 스스로의 단결과 투쟁뿐이었다. 임금을 위한 노동을 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임금노동자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의 실현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권장하는 사항이자 노동자가 자신을 철학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최저임금 문제의 본질


최저임금의 기능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는 최저임금에 딱 맞춰 임금을 지급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최저임금이 면피용으로 전락한 것이다. 심지어 최저임금 몇 십 원만 올리자고 해도 나라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저임금은 축구경기의 경고장(옐로카드)과 유사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축구경기에서 반칙은 금지사항이지만 처음 한 번의 경우 경고만 주고 넘어간 후 해당 선수가 두 번째 반칙을 하게 되면 레드카드로 퇴장 시켜 시합에 뛸 수 없게 한다.

최저임금은 옐로카드다. 임금은 일 한 만큼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대한민국의 많은 기업과 사용자들이 정당한 대가는 고사하고 먹고 살 만큼의 임금조차 지급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므로 경고장의 의미로 최저임금 제도를 두게 된 것이다. 임금은 일 한 만큼 주어야 하고 최저임금 아래의 금액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 처벌하겠다는 것이 이 제도의 의미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최저임금에 딱 맞춰 지급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 버렸다. 시장경제 질서가 기업에 의해 깨지고 있으며 이를 방관하는 정부에 의해 자본주의의 핵심인 시장경제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임금은 일 한 만큼 지급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국가가 결정하는 이유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있는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기본적 삶의 하한선을 정함으로써 헌법이 정한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야 할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은 면피용으로만 기능하고 있으며 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의 대가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자기결정권 침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 노동3권 

헌법 제33조 제1항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문제제기

노동조합이 파업을 시작하면 언제나 악의적인 비난이 따른다. 언론과 정부의 발표 에는 늘 '불법' 이라는 표현이 붙는다. 파업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지고 국가가 위기에 빠진다는 이들의 반복적인 선전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 심지어 당사자인 노동자들마저도 파업이 국가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헌법이 파업을 전제조건 없이 인정하고 있음에도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조차 쉬쉬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가) 노동3권의 목적

자본주의는 화폐를 지급하고 상품을 구입하는 시장경제 시스템이 기본 원칙이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같은 가치를 지닌 것끼리 교환하는 것이 생명과도 같이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상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인 노동력이 헐값에 팔리게 된다면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흔드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파업은 대한민국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 헌법은 노-사 의 대등한 힘의 균형이야말로 대한민국 체제를 수호하는 보루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약자의 편에 서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 각국의 노동권 

  • 독일 헌법: 근로조건과 경제조건의 유지와 개선을 위한 단체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그리고 모든 직업에 대하여 이를 보장한다. 이 자유를 제한 또는 방해하려고 하는 약정이나 조치는 위법이다.(1919년의 바이마르헌법 제159조). 바이마르헌법을 그대로 답습. 다만 단체의 자유를 단체를 조직할 권리라는 표현으로 바꿈으로써 단결권이 자유권 이상의 것임을 명백히 하였다.(독일기본법 제9조 제3항)
  • 프랑스헌법전문: 인간은 누구나 노동조합 활동에 의하여 그의 권리와 이익을지키며 또한 그가 선택한 노동조합에 참가할 수 있다. 근로자는 누구나 그의 대표를 통하여 근로조건의 집단적 결정과 기업의 경영에 참가한다. 
  • 이탈리아헌법: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은 자유이다.(제39조). 파업의 권리는 이를 규제하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행사될 수 있다.(제40조)
  • 영국과 미국: 헌법으로는 보호하지 않고 법률로써 노동권을 보장한다.
  • 미국의 1935년 Wagner법 제7조: 근로자들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승인.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노동조합을 부인하거나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것은 위법이다.
  • 미국에서 단결권을 인정하는 목적은 교섭력의 균형 (balance of bargaining power) 보장이다. 


다) 노동3권의 내용

단결권: 단체(오로지 노동조합)를 설립할 권리

단체교섭권: 노동조합이 사용자(기업)에게 교섭을 요구할 권리

단체행동권: 교섭이 결렬되는 경우 사용자(기업)에게 팔리고 있는 자신의 노동력을 줄이거나 중단할 권리 


다) 생각할 점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3권 중 일부만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경우 노동조합을 만들고 교섭할 권리는 인정되지만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여러 권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요지부동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3권은 각각의 권리가 아니라 서로 한 몸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결권만 인정하고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부인하거나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단결권의 의미를 백지화하는 것이며 결국 헌법의 노동 3권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Ⅲ. 맺는 글


근로기준법상 성인인 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정했지만 오히려 이것이 기준이 되어 8시간을 채워 일하는 것이 당연하게 취급되고 있는 등 노동자의 기본적 삶을 보장하기 위해 법이 정해 놓은 하한선이 오히려 정당한 기준인 양 행세하고 있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 과연 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법을 통해 지켜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헌법과 노동관련 법은 그 존재 목적을 노동자의 삶의 질 유지를 넘어 향상에 두고 있다. 하지만 살펴 본 바와 같이 법을 통해서는 삶의 질 향상은 고사하고 유지조차 불가능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어떤 방법을 통해 최소한의 삶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것은 노동자들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한 후 함께 힘을 모아 투쟁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역설적이게도 우리 헌법과 법이 제시하고 있다. 

노동자가 자신에게 채워진 족쇄를 스스로 끊을 생각 하지 않은 채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대에게 눈물로 호소하며 풀어달라고 애원하는 것은 스스로 노예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법은 누구의 편인가? 역사의 진행 과정을 보면 법은 힘 있는 사람들의 편에 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법을 노동자의 편에 서게 할 수 있을까? 노동자가 힘이 생기면 가능하다. 그것은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으로서 실현될 수 있다. 결국 법이라는 것이 어딘가에 새겨진 문자로서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이 변화무쌍한 속성을 지닌 것임을 인식하여 노동자가 법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법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때라야 진정 법이 노동자 곁으로 다가 올 수 있음을 자각하여야 한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간단한 검토를 통해 알 수 있다. 단결과 투쟁만이 노동자가 살 길이라는 구호는 여기에 닿아 있다.

  1. 전교조는 특성화고 대신 직업계고를 정식 용어로 사용키로 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이에 따른다. [본문으로]
  2.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본문으로]
  3. 헌법 제32조 ①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②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 ③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④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⑤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본문으로]
  4.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본문으로]
  5. 일제는 학생들을 모아 '학도근로보국대'라는 명칭으로 조직해 강제노역을 시켰다. 현재 굳이 노동 대신 근로를 사용하는 이유로 남북의 대치 상황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임종률 저 「노동법」) [본문으로]
  6. 근로기준법 제2조 [본문으로]
  7. 김형배, 「노동법」, 2012, 124쪽 [본문으로]
  8. 금융감독원 금융교육센터(http://www.fss.or.kr/edu/contents/dataroom/edu/e-learning.jsp) [본문으로]
  9. 김형배, 「노동법」, 2012, 124쪽 [본문으로]